한문휘 질의응답

새벽 세 시의 수신 상태

녹음 부스 안의 공기는 언제나 조금 죽어 있다. 윤제하는 그 사실을 열여섯에 처음 알았다. 방음이란 결국 소리가 나가지 못하게 가두는 일이고, 갇힌 소리는 나가지 못한 채 벽에 스며들어 죽는다. 좋은 부스일수록 더 그렇다. 삼십억을 들였다는 이 스튜디오의 A룸은, 그래서 관 속 같았다. "한 번만 더 가시죠." 유리 너머에서 엔지니어가 말했다.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게 보였다. 새벽 세 시였고, 그들은 같은 열여섯 마디를 마흔한 번 반복하고 있었다. 제하는 헤드폰을 고쳐 썼다. 반주가 들어왔다. 피아노 넉 마디, 스트링이 얹히고, 그가 들어갈 자리가 왔다. 노래했다. 정확했다. 음정도 박자도 발음도. 프로듀서가 요구한 감정선의 곡선을 정확히 따라 올라갔다가 정확히 내려왔다. 마흔두 번째 테이크는 마흔한 번째와 구분되지 않았고, 마흔한 번째는 첫 번째와 구분되지 않았다. 유리 너머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괜찮았어요?" 제하가 물었다. "완벽했어요." 엔지니어가 말했다. 제하는 헤드폰을 벗었다. 완벽했다는 말은 십일 년째 그를 따라다녔고, 그동안 단 한 번도 칭찬으로 들린 적이 없었다. --- 부스 밖으로 나오니 소파에 차민석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리를 콘솔 아래로 뻗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는 건 아니었다. 민석은 열여섯 살 때부터 제하 앞에서 자는 척을 했다. 그건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들었어?" 제하가 물었다. "들었지." "어땠어." 민석이 눈을 떴다. 천장을 한참 보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윤제하 씨 신곡 잘 들었습니다. 노래 잘하시네요." "민석아." "진짜야. 노래 잘해. 넌 예전부터 노래 잘했어." 민석이 콘솔 위에서 담뱃갑을 집었다가 여기가 실내라는 걸 깨닫고 도로 내려놨다. "근데 예전엔 못했었잖아, 열일곱 때. 음정 나가고 발음 뭉개지고 3절에서 목 쉬고. 그때가 나았어." 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 말이 심했다." "아니." 제하는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았다. "맞는 말이야." "제하야." "오늘은 그만하자." 민석이 뭐라고 더 말하려다 삼켰다.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방이었다. --- 주차장에서 민석이 차 키를 건넸다. 제하는 요즘 혼자 운전했다. 회사에서는 반대했지만 — 사고라도 나면, 사진이라도 찍히면 — 제하가 처음으로 고집을 부린 일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 열한 시에 미팅. 오 대표님 오셔." "응." "제하야." "응." 민석이 잠깐 망설였다. "앨범 말인데. 지금이라도 그냥… 회사 안에서 만들면 안 돼? 좋은 프로듀서 붙여준다잖아. 형이 말하는 건 그거야. 네가 곡을 열두 곡 다 써야 된다는 법 없어." "그럼 내가 왜 해." "팔려고." 제하가 민석을 봤다. 민석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야, 나 십일 년 동안 네 옆에 있었어. 나도 팔고 싶다. 그게 나쁜 거야? 백만 장 팔리는 앨범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게 죄야?" "아니." "근데 왜 그렇게 봐." "안 봤어." 제하가 차 문을 열었다. "들어가서 자." --- 강변북로는 텅 비어 있었다. 제하는 오디오를 켰다. 습관이었다. 새벽에 혼자 운전할 때 그는 늘 라디오를 켰는데, 음악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목소리가 필요해서였다. 아무나의 목소리. 자기한테 하는 말이 아닌 목소리. 〈…네, 오늘의 마지막 곡 나갑니다. 사연 보내주신 분이, 십 년 전에 이 앨범을 사서 아직도 갖고 계시대요. 근데 이거 지금 절판이거든요? 유통사가 없어졌어요. 회사도 없어졌고. 그래서 저희도 음원 못 틀어요. LP도 CD도 없어요. 그래서… 이건 좀 특이한 경인데, 청취자분이 직접 CD를 보내주셨습니다. 지금 스튜디오에 있는 물리적인 원반을 틀 겁니다. 이거 방송 사고 나면 제 탓입니다.〉 DJ가 웃었다. 〈문이레, 1집 (무명), 세 번째 트랙.〉 기타가 들어왔다. 제하는 처음에 그게 잘못 튜닝된 거라고 생각했다. 6번 줄이 반음 낮았다. 드롭D도 아니고, 그냥 조금 낮았다. 실수처럼. 그다음 마디에 그게 실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목소리가 들어왔다. 크지 않았다. 마이크에 너무 가까워서 숨소리가 다 들어가 있었고, 아마 방에서 녹음했을 것이다. 뒤에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비슷한 저역 노이즈가 계속 깔려 있었다. 프로라면 잡았을 소리였다. 잡지 않았다. 여자는 노래를 잘하지 않았다. 제하는 그걸 첫 소절에서 알았다. 음역이 좁고, 고음에서 목이 조이고, 비브라토는 거의 없었다. 발음은 뭉개졌다. 삼십 초쯤 지났을 때 그는 자기가 이 노래를 판단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십일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었다. 잘한다, 못한다, 팔린다, 안 팔린다. 그리고 1분 40초쯤에, 그 습관이 멎었다. 곡이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후렴이 없었다. 정확히는, 후렴이 올 자리에서 여자가 노래를 멈추고 기타만 남겨뒀다. 여덟 마디. 아무것도 없이. 그러다 아주 작게, 거의 말하듯이, 한 문장을 뱉었다. 노래가 아니라 말이었다. 음정이 없었다. 제하는 액셀에서 발을 뗐다. 차가 천천히 느려졌다. 뒤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갓길로 붙였고, 비상등을 켰고, 시동을 끄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곡은 3분 12초에 끝났다. 페이드아웃이 아니었다. 기타 마지막 코드가 울리다가, 여자가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들어갔고, 그대로 녹음이 끊겼다. 〈…와.〉 DJ가 말했다. 〈이거 진짜, 하…. 제작진이 지금 저한테 시간 없다고 손짓하는데요. 저 한마디만 할게요. 이런 게 왜 500장이 팔렸을까요. 정말 왜일까요. 문이레 씨, 혹시 듣고 계시면 연락 주세요. 저 십 년 기다렸습니다.〉 제하는 비상등을 켠 채로 십오 분을 더 앉아 있었다. 그의 앨범에는 열두 곡이 있었다. 전부 후렴이 있었다. 전부 3분 20초에서 3분 50초 사이였다. 전부 프로가 녹음했고, 전부 노이즈가 없었고, 전부 완벽했다. 그는 그중 한 곡도 갓길에 차를 세우고 듣지 않았다. --- 앨범을 구하는 데 나흘이 걸렸다. 제하는 처음엔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윤제하였다. 전화 한 통이면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되지 않았다. 음원 사이트에 없었다. 유통사가 2019년에 폐업하면서 계약이 붕 떴고, 재유통을 하려면 원권리자 동의가 필요한데 원권리자가 누군지 아무도 몰랐다. 레이블은 2018년에 사라졌다. 대표는 연락이 끊겼다. 중고 시장에 CD가 두 장 올라와 있었는데, 하나는 22만 원이었고 하나는 판매자가 사흘째 답이 없었다. 민석이 결국 22만 원짜리를 샀다. "이거 사기면 네가 물어내." 민석이 택배 봉투를 던지며 말했다. 케이스에 금이 가 있었다. 속지는 A4 두 장을 접어 넣은 게 전부였다. 인쇄 상태가 나빴다. 가사가 손글씨였고, 스캔이 흐려서 몇 글자는 읽히지 않았다. 뒷면에 크레딧이 있었다. > 작사·작곡·편곡·기타·보컬 — 문이레 > 드럼 — 정겨울 > 믹싱 — 문이레 > 마스터링 — 문이레 > 녹음 — 서교동 302호 전부 혼자였다. 마스터링까지 혼자 했다. 제하는 그 줄을 세 번 읽었다. 마스터링을 혼자 하는 사람은 없다. 돈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그 라디오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는 CD를 차에 두고 일주일 동안 그것만 들었다. 여덟 번째 트랙에서 여자가 가사를 틀렸다. 한 마디를 통째로 놓치고 반 박자 늦게 들어왔다. 지우지 않았다. 열한 곡짜리 앨범에 그런 게 열 개쯤 있었다. 제하는 그게 미치도록 부러웠다. --- "윤제하 씨." 오상헌 대표가 회의실 창가에 서 있었다. 그는 앉아서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앨범 말인데." "네." "프로듀서 바꾸자." 제하는 고개를 들었다. "김PD가 그러더라. 너랑은 못 하겠대. 네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열두 곡 다 뒤집어엎었다며. 벌써 세 번째잖아." "제가—" "윤제하." 오 대표가 돌아섰다.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오 대표는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네가 지금 뭘 하고 싶은 건지 나한테 설명해봐. 딱 한 문장으로." 제하는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오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듯이. 안됐다는 듯이. "열아홉 때 생각나냐." 그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네가 나한테 밴드 계속하게 해달라고 했을 때. 그때 내가 뭐라 그랬지." "…삼 년만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삼 년. 근데 십일 년이 됐지." 오 대표가 웃었다. "미안하다고 안 할 거야. 그 십일 년 동안 네가 뭐가 됐는지 봐. 근데 제하야, 나 너한테 이거 하나는 말해줄 수 있어. 네가 지금 못 만드는 이유는 프로듀서 때문도 아니고 회사 때문도 아니야." "그럼 뭡니까." "너한테 할 말이 없어서야."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할 말 있는 사람은 곡이 나와. 서른 곡이든 백 곡이든 나와. 너 열일곱 때 한 달에 열두 곡 썼어. 기억나? 다 쓰레기였는데 열두 곡이었어." 오 대표가 서류를 집었다. "나는 네가 밉지 않아. 나는 네가 안됐어.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가 회의실을 나갔다. 제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 찾는 데는 열흘이 더 걸렸다. 문이레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2021년 이후로 존재하지 않았다. SNS 계정 마지막 게시물이 2021년 3월. 사진 한 장. 기타 넥 위에 놓인 손. 캡션 없음. 공연 기록 없음. 인터뷰 없음. 위키 문서 없음. 팬카페는 회원 열네 명에 마지막 글이 4년 전이었다. 민석이 찾아낸 건 드러머 쪽이었다. "정겨울. 이 사람 지금 강남에서 치과 위생사 해." 민석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SNS는 살아 있어. 근데 음악 얘기는 하나도 없어. 다 강아지 사진이야." "연락 됐어?" "DM 보냈지. 안 읽어." "…그럼." "근데." 민석이 화면을 넘겼다. "이 사람이 3주 전에 스토리에 이런 걸 올렸어." 사진이었다. 어두운 복도, 형광등, 문 하나. 문에 '302'라고 적혀 있었다. 캡션은 딱 한 줄이었다. > 아직 있음 제하가 화면을 들여다봤다. "302." "어." "CD 뒷면에." 제하가 말했다. "녹음 — 서교동 302호." 민석이 제하를 봤다. 오래 봤다. "제하야." "응." "너 지금 뭐 하는 건지 알아?" "몰라." "그거 스토킹이야." "알아." "…" 민석이 태블릿을 내려놨다. "위치는 못 찾아. 서교동에 302호가 몇 개인 줄 알아?" 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사진을 확대하고 있었다. 문 옆에 뭔가 붙어 있었다. 스티커. 반쯤 뜯긴. 그는 그 스티커를 알았다. 2011년에 홍대에서 열린 어떤 페스티벌의 로고였다. 그가 열여섯이었고, 밴드 (월광)으로 그 무대의 다섯 번째 순서에 섰던. --- 건물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간판 없는 4층 건물이었고, 1층이 세탁소였고, 계단에 물 자국이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제하는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고 3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심장이 뛰었다. 오르막 때문이 아니었다. 302호 문 앞에 섰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드럼이 아니었다. 기타도 아니었다. 신디사이저 프리셋을 넘기는 소리였다. 딸깍, 딸깍, 딸깍. 누군가 같은 두 마디를 계속 재생하며 소리를 바꿔보고 있었다. 두 마디가 반복됐다. 열 번쯤. 그러다 멈췄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노래가 아니었다. 혼잣말이었고, 벽 너머라 뭉개졌지만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니 이게 아니라니까." 제하는 그 목소리를 알았다. CD 마지막 트랙에서, 곡이 끝나고 녹음이 끊기기 직전에, 아주 작게 들어가 있던 그 목소리였다. 편집으로 잘라내지 않은. 그는 손을 들었다. 노크를 하려는 순간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났다. 남자 목소리였다. "이레야. 이거 그냥 A안으로 가자. 걔네 회사에서 내일 오전까지 달래." "이거 후렴이 안 붙어요." "붙어. 아까 그거 좋았어." "아까 그건 제가 쓴 게 아니잖아요." 잠깐 침묵. "이레야."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그게 더 나빴다. "네가 쓴 거 맞아. 크레딧이 뭐가 중요해. 돈은 나가잖아." 제하는 손을 내렸다. 문 안쪽에서 아주 오랫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딸깍, 하고 다시 프리셋 넘기는 소리가 시작됐다. 제하는 복도에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60헤르츠. 그는 저도 모르게 그 음을 세고 있었다. 열일곱 살 이후로 하지 않던 짓이었다. 딸깍. 딸깍. 딸깍. 그는 주머니에서 CD 케이스를 꺼냈다. 금이 간 것. 22만 원짜리. 손글씨 속지가 든 것. 그리고 노크했다. 세 번. 안에서 소리가 멎었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문 너머에서 멈췄다. 도어스코프로 내다보는 기척. "…누구세요?" 제하는 마스크를 내렸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한참을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걸쇠 푸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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