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부 홍일점

그 동아리의 비밀

최범규가 날 제멋대로 베이킹 동아리에 꽂아넣은 바로 
그 다음날. 
나는 아침부터 힘없는 발걸음으로 동아리실까지 걸어갔다. 
신입 환영식을 할거라나 뭐라나.
대체 이 조촐한 동아리가 뭐라고 이래야 하는지.....
부원이 고작 여섯명뿐인데도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재료와 조리기구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긴 했다만. 

"신여주 빨리 앉아. 케이크 자르게." 

명색이 제빵 동아리답게 웬 자그마한 케이크가 놓여있다. 

'얘네가 만든거겠지 백퍼.' 

나를 포함한 부원들이 둘러싼 가운데 최범규가 내 손에 
빵칼을 쥐여준다. 나보고 자르라고? 

"이런건 새로온 사람이 잘라야돼." 

"고, 고마워."

오. 고맙긴한데 되게 부담스럽네. 나는 조심스레 
케이크를 6등분으로 잘랐다. 

"먹어봐. 다같이 만들었어." 

"뭐래 강태현이 거의 다 만든건데." 

"아 됐어 걍 먹기나 해." 

기대하는 다섯 쌍의 눈 때문에 체할것 같은 기분이다.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입에 넣었다. 맛이 없진 않겠지 설마. 

"야, 어때?" 

놀랍게도 꽤 맛있었다. 

"팔아도 되겠다." 

내 반응에 부원들도 적잖이 놀란 눈치다. 

"극찬인데??" 

"진짜로 케이크는 얘한테 맡기는게 맞네." 

"최연준은 몇번 태워먹어가지고." 

"갑자기 내 얘기가 왜 나와?" 

정신없지만 이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나름 괜찮은 동아리 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올때 앞치마 갖고와. 너도 만들어봐야지." 

"망칠거 같은데." 

"다 알려주니까 신경쓰지말고. 아 맞다.
우리 이름은 다 외웠어? 반이랑." 

"최범규는 같은 6반이고. 연준, 수빈이 3반. 
 태현하고 카이가 2반이잖아." 

"잘 기억하네." 

수빈이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중에서는 
말투도 인상도 제일 차분한 편인 듯 하다. 

"이제 교실 가도 돼?" 

"응. 어차피 잠깐 부른거라. 다음에 보자."

난 연준의 인사를 듣고난 후 동아리실을 나섰다. 





여주가 나간 동아리실의 분위기가 일순 차갑게 굳었다. 
연준이 침묵 속에서 어렵사리 입을 연다. 

"신여주 쟤 우리 기억 못하지." 

"그런거 같다. 그때 잠깐 본게 다잖아." 

"벌써 10년이나 됐네. 지금 고2니까." 

범규는 조금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으려 지긋이 눈을 
감았다. 
자신은 어렴풋하게나마 그 얼굴과 목소리가 기억나는데, 
정작 여주는 그때의 기억 한줌조차 없었다. 입이 쓰다. 

"난 그때 걔 상태가 너무 안좋았던 것만 기억나." 

"나도."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데." 

그들은 각자 10년 전 어린 여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창백한 얼굴에 피멍이 군데군데 문신처럼 새겨진 아이.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글쎄 모르지."

"왜? 뭐 걸리는거 있어?" 

"아니 그냥... 느낌이 쎄해서." 

자기 직감이 틀리길 바라는건 처음이라고 범규는 생각했다. 
때때로 보이는 무기력함과 매일 혼자 다니는 모습. 성적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불안해하는게 안쓰러워 동아리에 
가입시킨 것 뿐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건 필수불가결한 
선택이 아닌가 싶었다. 

'친해지면 내가 도와줄 명분이 생겨.' 

이 동아리가 사실 저를 도와주기 위한 하나의 수단임을
여주는 모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