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부 홍일점
그 동아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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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2조회수 16
그 다음날.
나는 아침부터 힘없는 발걸음으로 동아리실까지 걸어갔다.
신입 환영식을 할거라나 뭐라나.
대체 이 조촐한 동아리가 뭐라고 이래야 하는지.....
부원이 고작 여섯명뿐인데도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재료와 조리기구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긴 했다만.
"신여주 빨리 앉아. 케이크 자르게."
명색이 제빵 동아리답게 웬 자그마한 케이크가 놓여있다.
'얘네가 만든거겠지 백퍼.'
나를 포함한 부원들이 둘러싼 가운데 최범규가 내 손에
빵칼을 쥐여준다. 나보고 자르라고?
"이런건 새로온 사람이 잘라야돼."
"고, 고마워."
오. 고맙긴한데 되게 부담스럽네. 나는 조심스레
케이크를 6등분으로 잘랐다.
"먹어봐. 다같이 만들었어."
"뭐래 강태현이 거의 다 만든건데."
"아 됐어 걍 먹기나 해."
기대하는 다섯 쌍의 눈 때문에 체할것 같은 기분이다.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입에 넣었다. 맛이 없진 않겠지 설마.
"야, 어때?"
놀랍게도 꽤 맛있었다.
"팔아도 되겠다."
내 반응에 부원들도 적잖이 놀란 눈치다.
"극찬인데??"
"진짜로 케이크는 얘한테 맡기는게 맞네."
"최연준은 몇번 태워먹어가지고."
"갑자기 내 얘기가 왜 나와?"
정신없지만 이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나름 괜찮은 동아리 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올때 앞치마 갖고와. 너도 만들어봐야지."
"망칠거 같은데."
"다 알려주니까 신경쓰지말고. 아 맞다.
우리 이름은 다 외웠어? 반이랑."
"최범규는 같은 6반이고. 연준, 수빈이 3반.
태현하고 카이가 2반이잖아."
"잘 기억하네."
수빈이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중에서는
말투도 인상도 제일 차분한 편인 듯 하다.
"이제 교실 가도 돼?"
"응. 어차피 잠깐 부른거라. 다음에 보자."
난 연준의 인사를 듣고난 후 동아리실을 나섰다.
여주가 나간 동아리실의 분위기가 일순 차갑게 굳었다.
연준이 침묵 속에서 어렵사리 입을 연다.
"신여주 쟤 우리 기억 못하지."
"그런거 같다. 그때 잠깐 본게 다잖아."
"벌써 10년이나 됐네. 지금 고2니까."
범규는 조금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으려 지긋이 눈을
감았다.
자신은 어렴풋하게나마 그 얼굴과 목소리가 기억나는데,
정작 여주는 그때의 기억 한줌조차 없었다. 입이 쓰다.
"난 그때 걔 상태가 너무 안좋았던 것만 기억나."
"나도."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데."
그들은 각자 10년 전 어린 여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창백한 얼굴에 피멍이 군데군데 문신처럼 새겨진 아이.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글쎄 모르지."
"왜? 뭐 걸리는거 있어?"
"아니 그냥... 느낌이 쎄해서."
자기 직감이 틀리길 바라는건 처음이라고 범규는 생각했다.
때때로 보이는 무기력함과 매일 혼자 다니는 모습. 성적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불안해하는게 안쓰러워 동아리에
가입시킨 것 뿐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건 필수불가결한
선택이 아닌가 싶었다.
'친해지면 내가 도와줄 명분이 생겨.'
이 동아리가 사실 저를 도와주기 위한 하나의 수단임을
여주는 모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