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아씨께서 돌아가셨다. 목놓아 울 수조차 없었다. 나에게 그럴 자격 따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씨의 상이 진행되고 북적이던 마당과 안채는 해가 지고서야 고요해졌다.
하지만 찾아온 사람 중 그 누구도 아씨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아씨의 집안을 보고 연이라도 댈까 해서 온 자들이었다.
점점 밤은 깊어만 가고 모두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달이 붉게 차올랐으나 내 마음은 텅 비어 공허함과 쓸쓸함만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아씨,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이렇게 달이 환히 빛나는 날에 여린 목숨 거두어 가시다니"
아씨를 진심으로 따르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오래전, 내가 5살일 무렵에 나의 부모님께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한순간에 죄인의 자식이 되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 울고만 있을 때, 아씨께서 나를 거두어주셨다.
아씨는 내가 죄인의 자식이라는 편견 없이 날 대해 주셨다. 그때부터 난 아씨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아씨께서는 날 많이 아껴주셨고, 나 또한 그만큼 아씨를 따랐다.
후에 아씨께서 아프시다는 의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씨 앞에서는 그런 모습조차 내색하지 않았다. 가장 힘드신 분은 아씨셨을 테니까.
아씨께서 아프신 후에는 더욱 아씨를 챙겼다. 나에게 있어 아씨는 세상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씨께서 돌아가셨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부정하고자 했다.
아씨를 흔들어도 보고 불러도 보았지만, 아씨께서는 다시 눈을 뜨지 못하셨다.
덜컥 겁이 났다.
‘아씨께서 안 계시면 이제는 누가 날 지켜주지?’
슬픔과도 동시에 이기적인 생각부터 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아씨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목숨만을 부지하려는 내 꼴이 너무나 처량하고 죄스러워 발길이 닿는 대로 도망쳤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내가 과연 인간일까. 아씨는 날 거두어주셨는데 그 온정을 배반한 건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덧 달이 뜨고 마침내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멈추어 섰다. 아씨가 홀로 생각하거나 단둘이 있고 싶을 때마다 찾던 곳이었다.
이곳은 달빛을 품은 호수, 실바람이 불어오는 마루, 그리고 관리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피어있는 들꽃들. 오늘따라 이곳이 쓸쓸해 보인다면 내가 이상해진 걸까.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미 그곳에선 누군가 멍하니 호수에 비친 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이곳을 떠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자시(子時)가 넘도록 그가 이곳을 떠나지 않자 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어두워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 옆에서 본 그의 모습은 어딘가 허망하고 슬픈 표정이었다.
옷차림을 보아 귀족인 것 같았고, 주위에 흩어져 있는 술병과 그에게서 풍기는 술의 냄새는 그의 상태를 짐작게 했다.
무척이나 차가운 날씨였지만 얇은 그의 옷차림을 보자 아씨가 떠올라 그에게 요를 건넸다.
“받으세요. 날이 찹니다.”
나의 말을 들은 그는 실소를 터뜨리고선 이렇게 말했다.
“날이 아무리 차고 시리다고 한들, 정인을 잃은 이의 마음보다 시리겠습니까.”
그의 대답을 듣고 알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아씨의 정인이었었다는 것을.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내가 아씨와 처음 만난 날, 아씨 곁에 있던 그를 보았다. 그는 아씨를 보러 종종 이 집에 찾아오곤 했다.
그러다, 그가 집안 사정으로 아씨를 찾아오지 못한 사이 아씨께서 돌아가셨다. 이미 그가 집안 사정으로 찾아오지 못한 건 아주 오래전부터이지만 말이다.
내가 그를 떠올리고 있는 사이 그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곳에 계십니까.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의 말에 더 이상 아씨의 죽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던가.
그냥 난 아씨의 죽음이 두려워 회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난 아직도 아씨의 죽음을 믿을 수 없는데 쉽게 받아드린 그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곳에 들어온 것은 당신도 매한가지 아닙니까. 내가 누구냐 묻는다면 그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워 놓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나의 대답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의 표정을 보고서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도 아직 아씨를 놓지 못했다는 것을.
“낭자를 아십니까.”
나는 그의 곁에 함께 걸터앉고서 대답했다.
“네, 압니다. 제 은인이자 세상이셨던 분이시니까요.”
하늘의 달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계절 속 더 밝게 빛나는 달의 모습이 마치 아씨를 연상케 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도련님은 제게 아씨가 세상이 된 이유를 아십니까?"
나의 물음에 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원래 제 세상은 부모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제 부모님께서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고 전 혼자가 되었지요.
그때 아씨께서 절 거둬주신 게 아씨셨습니다. 그때까진 아씨가 태양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달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아씨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오랜만이어서였을까. 다른 사람들에겐 이야기하지 않고 끝끝내 삼켰던 이야기와 함께 말을 이었다.
“아씨께서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아씨께서는 달도 가지고 계신 세상이란 것을요.
아씨께서는 늘 빛을 낮추어 쉼이 필요한 사람에겐 쉼을, 끝없이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등불이 되어주셨으니까요.”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의 씁쓸함 속에는 원망도 그리움도 허무함으로도 표현하지 못할 감정들이 내 마음을 채웠다.
“사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제 곁에 아씨께서 계셨다는 건, 아마 저의 인생에 다시 없을 행운이었겠지요.”
달이 구름에 가려지고 어두워진 사이, 난 나의 세상들을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모든 게 나의 탓인 것 같았다. 부모님과 아씨의 죽음도 모두 나로 인해 생겨난 비극인 것만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세상도 슬픈 표정 하나 없는 주위 사람들도 모두 원망스러웠다.
머릿속에는 부모님과 아씨에 원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지만 울려대는 목소리를 쉽게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눈앞이 흐려지고 점점 손이 떨려왔다. 너무나 두려웠다. 정말로 내 탓일까 봐. 그들이 정말로 나를 원망할 것 같아서.
그리고 나의 세계였던 그들이 무너짐으로 인해 다시 내가 망가져 버릴까 두려워 말을 잊지 못했다. 말을 하려 했으나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한참이나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그가 말을 꺼냈다.
“제 스승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나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원망하고 책망한다고 합니다.
헌데, 사람이 눈을 감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자신을 놓아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라고 하시더군요.”
대화 내내 시선을 맞추지 않던 그가 나를 바라보며 작은 위로를 건넸다.
“당신의 연유를 알지 못해 더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없지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마 그분도 그것을 바라실 겁니다.”
그가 건넨 위로는 자책하고 있던 나에게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손길 같았다. 한참을 울고 울었다. 그럼에도 묻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그가 고마웠다.
‘아씨께서 계셨다면 정말…. 행복해하셨겠지?’
머릿속에 떠다니는 물음을 애써 지우고 눈물을 닦은 채 그에게 말했다.
“아씨께서 전해달라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두렵고 힘들어도 꼭 전해야 했기에 잠긴 목소리로 꾸역꾸역 말을 이었다.
“태양도 아니고 달도 아닌 세상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한여름같이 뜨거운 태양도, 지칠 땐 쉼터가 되어주는 달도 공존하는 세상으로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봤다. 그는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잠시 망설이다 그의 손에 편지를 쥐여주었다.
“지금 드린 편지는 아씨께서 도련님께 남기신 편지입니다. 부디 도련님이 겨울이 지날 때에 도움이 되길.”
나는 그 말을 뒤로 급하게 그곳을 빠져나와 벽에 기대듯 주저앉았다. 그제야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말을 뱉었다.
“이것밖에 하지 못하는 나라서 미안합니다.”
내 등 뒤 너머에는 그의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결국 그날 세상을 잃어버린 우리는 사라지고 있는 세상을 놓지 못해서 그곳에 남았다.
이별까지 사랑했던 세계와 함께 우리는 사라지기로 했다.
돌아오지 않는 세상이 남긴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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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별 마침.
세.모.별.
세.모.별.

daunkim
2025.02.18조회수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