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말 했잖아. 짐 싸서 들어온다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명 유치원도 등록 취소하고
도망치듯 지유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지 이틀이나 지났었다.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이웃이겠거니 하며 문을 활짝 열었는데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최연준이 있을줄이야..
"나 허락한 적 없어"
"내 방은 어디야?"
"야!.."
입술을 깨물며 최연준을 노려봤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시발 이제와서 애 아빠 노릇 한다는 거야 뭐야
물론 내가 애 벴다고 말도 안해주긴 했지만
분명 헤어진 사이였다. 우리는..
"어므아! 어마!!"
"..응 지유야. 지유 졸려?"
최연준을 마주했기에 힘이 잔뜩 빠졌지만
졸리다며 칭얼 거리는 지유를 안느라 다시 힘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짐을 정리하던 최연준이 지유의 목소리에 멍하니 지유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 긴 다리로 몇 발짝 걸어오더니 지유를 가까이서도 바라본다.
"..지유 왜 쳐다보는데"

"너무 예쁘다. 지유야"
뜬금없는 말에 최연준을 보니 뭔가 감격과 신기함이 섞여있는 표정이였다. 지유가 최연준이랑 많이 닮긴 했구나 나도 신기한데 최연준은 얼마나 신기할까
"최연준.. 나 너 정리한지 오래야. 왜 그래 진짜"
"..너야말로 왜 그래"
왜 말 안 했어? 난 그게 제일 궁금해. 최연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거야.. 난 애를 지울 자신이 없었고, 그 때 당시에는 최연준을 잊지 못 했고
지유를 낳고보니 내 새끼라 그런가 너무 예쁘고..
아무것도 모르고 공부하고 있을 최연준이 밉기도 하면서도 보고 싶고..
그렇게 살다 정신 차려보니 두 살 베기 애 엄마가 되어 있었던 건데.
물론 지유를 키우면서 애 아빠가 없다는 게 금전적이나 애한테나 부족하긴 했었다. 그래도 나는 나름 혼자서 잘 키우고 있었고 최연준 너는 필요도 없었다고.
"뭐 그 때 내가 임신 했다고 말 하면 우리가 안 헤어졌을 것 같아?"
"내가 책임 못 질 이유는 뭔데"
".. 너 고작 고시생이였어. 병신아.. 제일 힘들었을 때였잖아."
"아, 그래서 나름의 배려였다 이 말이야 지금?"
..아 왜 화가 난거야 쟤는.
어느 순간 허리에 손을 올리고 삐딱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최연준이였다.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난 거지?
"일단 지유 내가 재울게. 지유 방 어디야"
"뭐? 지유를 너가 어떻게 재ㅇ.."
맞다. 최연준 유치원 선생이였지
내가 멍 때리는 사이 지유를 가볍게 안은 최연준이 익숙하게 지유의 등을 토닥이며 재우기 시작했다.
방 여기야? 내게 묻는 말에 화들짝 놀란 나는 얼떨결에 지유와 내가 자는 방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방으로 들어간 최연준이 10분 뒤에 나오더니 식탁에 앉았다.

"솔직히.. 헤어지고 나서 죽기 살기로 공부 해서 합격한거 맞아"
"..그래"
"그래도 이건 너무 이기적이잖아 여주야. 금전적인 문제,애 키우는 문제. 같이 나눠서 키웠으면 더 좋았잖아"
"..."
"왜 너 혼자 결정하고 판단해."
"미안해"
그래. 나는 최연준이랑 마주치는 게 겁이 나서 피한 거지만. 최연준은 나와 내 아이, 아니 자기 아이를 보고나서 기분이 어땠을까. 그건 생각도 못 했다.
미안하다고 말 하니 최연준이 가만히 나를 보다 내 손을 잡았다.
"..나랑 다시 만나."
"어?.."
"나랑 다시 시작해, 부부 사이로"
"야 최연준.."
"멋대로 집에 들어온 건 나도 미안해. 우리 집에 가자 하면 절대 안 갈거 알아서 그런거였어"
"..."
하 씨.. 눈물 날 것 같아. 그렁그렁한 내 눈을 보던 최연준이 나를 조심스레 감싸 안아주었다.
너무 그리웠다. 이 품, 이 향기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나를 보자 최연준이 장난 반 진심 반인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남자친구 있는 거 아니지?"
"..있겠냐!"
아주 아주 평화로운, 그런 날이였다.
__________________
소재 신청은 댓글로 달아주세요!
